▲ 최용호(경북대학교 명예교수)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대기업-중소기업의 협력모델로 자리 잡은 수직계열화가 ‘한강의 기적’을 일궈내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소수의 자동차·전자·조선 등 대기업 완제품 메이커가 대량생산·대량수출의 선두에 서고, 수많은 중소기업이 1차 밴드, 2·3차 밴드라는 이름으로 대기업이 요구하는 부품과 장비를 일사불란하게 납품해온 것이다.

이처럼 특정 대기업 전속 하청생산체제라 할 수직계열화가 한정된 자원으로 빠른 시간 내에 압축된 성장을 달성해야 하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는 어쩌면 가장 효과적인 모델이었는지도 모른다.

고도성장을 갈망했던 시절, 대량생산체제의 불완전성을 커버하기 위해 생산요소시장에서 완제품 메이커의 안전판을 만들어 준 것은 다름 아닌 국가였다. 1975년에 중소기업계열화촉진법을 만들고, 대대적인 지원조치를 통해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했다.

개별 완제품 메이커들은 부가가치가 높은 핵심부품은 자사의 계열회사를 만들어 우선적으로 조달했다. 여타 부품업체에 대해서는 자본참가·기술 및 자금지원, 그리고 협력회의 구성 등을 통해 직접 통제할 수 있는 수직적 하청체제를 확립했던 것이다.

단가 후려치기 등 부작용 빈발

이러한 하도급거래 과정에 수많은 문제점이 불거지고 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CR(Cost Reduction)이라 부르는 끊임없는 단가인하 요구, 대금결제 지연, 부당한 반품 요구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대기업 노조의 특별대우를 위해 하청업체들이 지속적으로 희생당하는 사례를 빈번히 보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하청기업이 특정의 모기업과 배타적으로 거래해야하는 전속거래방식은 최근 세계경제의 급격한 부침과 변화무쌍한 패러다임 시프트 속에서 중소부품업체의 발전을 가로막는 큰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정기업의 거래 사슬에 묶여있는 탓으로 지속적인 기술개발과 시장개척의 기회를 놓쳐 규모·범위의 경제를 실현하기가 어렵다.

세계 5대 자동차 생산국이면서도 세계 100대 자동차 부품업체 중 대기업 계열이 아닌 한국 업체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이를 잘 나타내고 있다.
     
독창적 기술력이 극복 열쇠

그간 한국의 공업화를 주도해온 수직적 하청생산체제는 한계에 부닥쳤다는 소리가 높다. 글로벌 수요의 부진으로 대기업의 성장이 정체되고 있고, 기술혁신 속도가 가파르게 빨라지고 있으며, 제4차 산업혁명의 거센 파고가 기존 산업계에 몰아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과 같은 불황업종은 모기업의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함은 물론, 하청중소기업의 정비책까지 함께 논의해야 할 시점에 와있다.

벤처기업을 비롯한 혁신 중소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육성하는 동시에. 융·복합이라는 새로운 산업환경을 선도할 수 있는 세계적인 장비·부품기업의 탄생을 도와야 한다.

한국이 세계적으로 톱을 달리고 있는 업종부터 전속거래의 빗장을 풀어 국내적으로는 우수한 중소기업 제품의 교차구매가 이뤄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세계 각지의 완제품 메이커에도 공급할 수 있도록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히든 챔피언의 출현을 촉진하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될 줄 안다.

이를 위한 제도적인 보완과 정비도 중요하지만, 더욱 핵심적인 문제는 부품과 장비를 생산하는 중소기업 스스로 대기업에 의존하는 소위 ‘누워서 크는 콩나물’의 경영관행을 깨는 일이다.

아무리 빗장이 풀리고 정부의 지원이 있다하더라도 독보적인 기술력이 없다면 세계시장 진출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다. 중소기업들이 자강불식(自彊不息)의 자세로 쉼 없는 신제품 개발과 마케팅 역량 배양 등 경영혁신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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