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민섭(한국폴리부틸렌공업협동조합 전무이사)

“제품가격이 낮게 형성돼 큰일입니다.”
동종업계 중소기업 대표들의 하소연이다. 지금까지 각종 중소기업정책은 많았지만, 가격정책 만큼은 기업인들이 실감하지 못하는 느낌이다. 언뜻 생각해보면 가격이 하락하면 소비자가 수혜를 받을 수 있다는 묵시적인 합의가 있었기에 이렇다 할 정책들이 나오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물론 하도급법에서는 부당한 가격하락을 제한하고 있으나, 이는 주로 수직적인 거래관계에 해당되며, 수평적인 거래의 경우에는 가격제한은 찾아보기 어렵다.

기업들마다 가격을 책정하는 변수는 원가, 생산량, 판매량, 인지도 등에 따라 차별화될 수는 있고 상식적인 최저가격 또한 존재한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저가판매하는 주요 이유는 한정된 시장에서 자사제품을 더 많이 팔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저가판매의 방법도 한시적인 저가판매나 시장점유율 확대, 재고물량정리, 부품 고가 끼워팔기 등 가지각색으로 존재하지만, 자율경쟁이기에 누가 나서서 제재하기도 어렵다.

기업들마다 “우리는 가격을 낮추지 않았다. 다른 기업들이 내리고 있다”라고 근거희박한 책임공방이 이어지기도 하지만, 가격하락 현상만은 명백히 존재한다.

문제는 기업간 가격경쟁으로 설정된 최저가격이 여타 발주기관의 기준가격으로 형성돼 연쇄적인 가격하락를 부추긴다는 점이다. 급기야 기업 상호간 반목과 불신은 물론 제품과 업계의 이미지까지도 추락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덧붙여 기업들은 수익성 악화를 만회하기 위해 원가절감, 구조조정, 비용절감 등의 자구노력을 치열하게 경주하게 되고 이는 자칫 품질저하나 소비자 피해의 문제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나 영세기업들의 경우에 이러한 자구노력이 지속돼 한계상황에 직면하면 경영주의 경영불안감, 폐업이나 품목전환 고려, 임직원의 추가적인 업무부담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무의사결정(無意思決定)이란 용어가 있다. 사태가 불거질 때까지는 어떤 결정도 하지 않는다는 이론인데, 가격하락의 경우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기업들의 자원과 업무, 인력의 낭비를 사전예방하고 치열한 가격경쟁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가 가격하락에 대해 더 이상 방관자가 아니라 기업 오너의 입장에서 자신에게 처한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수도 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PC방 등의 가격할인에 대응해 ‘생존가격법제화’를 추진중에 있다. 또 골목서점 보호차원에서 ‘도서정가제’가 시행돼 정가의 10%까지만 할인이 된다. 대리점에 일정가격 이하로는 판매되지 않도록 하는 재판매유지행위도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이 같은 시도나 조치는 기업인들에게는 고무적인 조치다.

가격최저선 설정이 단순하지는 않겠지만 위 사례처럼 정가의 10% 선은 참고할 만하다. 물론 거래처별로 정가를 차등적용할 경우에는 10%의 할인폭이 문제시될 수 있겠지만, 시행과정상 보완의 지혜를 모은다면 가능하리라고 본다.

발주처와 기업이 원가변동 등에 따라 수시로 제값을 설정하고, 발주처는 그 이하로는 구매하지 않고, 납품기업은 그 이상으로 납품한다면, ‘제값주고 제값받기’의 정착이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지금과 같은 가격경쟁과 소모적인 자구노력은 줄어들 수 있고, 그 여력은 추가적인 경쟁력강화 자원으로 투입될 수 있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지나친 가격경쟁의 부작용에 대해 좌시하지 말고 특단의 개선노력과 조치로써 기업인들의 시름을 덜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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