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성택(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지난달 22일부터 공공기관들은 물품을 제조구매할 때 아무리 작은 금액이라도 원칙적으로 계약이행능력심사를 통해 적정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그동안에는 2억1000만원 미만 물품 구매 시 최저가 입찰이 원칙이었다.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정부의 이번 조치로 인해 중소제조업체들은 이제 저가 출혈경쟁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됐다. 현장에서는 매우 반기는 모습이다. 사실 그동안 공공조달시장 참여와 관련해 중소기업들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바로 가격하락 문제였다. 당장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많은 중소기업들 입장에서는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턱없는 가격임을 잘 알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입찰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연구개발에 필요한 이윤은 생각할 수도 없었고 직원들 월급과 같이 시급히 필요한 자금을 융통하기 위해서는 출혈경쟁이 문제가 아니라 더한 일도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소기업·소상공인 일수록 그랬고 불경기일수록 더했다. 그나마 정책적으로 88%의 낙찰 하한율이 설정된 중소기업자간 경쟁입찰은 덜했지만 예정가격의 절반 정도까지 낙찰가가 떨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한 초등학교 졸업앨범 입찰에서는 최종 낙찰가가 1원까지 떨어진 경우도 발생했다. 당연히 중소기업인들의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턱없는 저가로 우량기업 퇴출 초래
지난 3월 중소기업중앙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현장을 방문할 때마다 가장 많이 들려오는 소리도 비현실적 조달가격 문제였다. 조달청장 간담회처럼 기관장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까지도 가격하락 문제는 늘상 단골손님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의 이번 조치는 중소기업인들에게 가뭄에 단비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최저가 낙찰제는 예산절감이라는 명분아래 공공기관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적용해야 하는 제도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일선 구매담당자들이 최저가 낙찰제를 많이 활용한 진짜 이유는 감사회피 측면이 강했다. 구매대상 물품의 특성에 상관없이 계약 시점을 기준으로 낙찰가격의 높낮이만을 집중적으로 파헤치는 뿌리 깊은 감사관행은 공공기관 구매담당자들로 하여금 최저가 낙찰제의 활용도를 높이게 하는 주된 원인으로 작용해왔다.

최저가 낙찰제가 실제 예산절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의견들도 많다. 현장의 중소기업인들은 많은 의구심을 제기한다. 당연히 계약된 사양의 제품을 납품해야 하지만 이윤을 남기고 존속 가능성을 높여나가야 하는 기업의 속성상 실제 납품과정에서는 수주가격을 고려해서 제품 사양이 결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A/S 등 사후관리와 관련해서도 소홀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최저가 낙찰제는 사회적 약자인 소기업·소상공인들의 피해만을 확대시키는 문제점도 안고 있었다. 무리한 저가 입찰경쟁으로 마진율이 적어진 경우에는 하도급 관행이 공정하지 못한 우리 현실상 그 피해는 고스란히 원자재납품업체 등에 전가돼 왔었다.

최저가 낙찰제는 지나치게 저가라서 오히려 기술력 있고 우량한 업체들의 수주난을 가중시켰고 경쟁력이 낮은 업체들보다 먼저 시장에서 퇴출되는 부작용까지 야기시켜 왔다.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에서는 단순히 최저가 여부를 기준으로 낙찰자를 선정하는 경우가 거의 사라졌다. 당장의 입찰가보다는 사후 추가비용 발생이나 서비스, 품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가격대비 최고가치(Value for Money)를 평가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한 것이다.

적정가 구매 시스템 확대 시행을
다행히 정부가 2억1000만원 미만 물품 제조구매에 대해 최저가 낙찰제 원칙을 폐지했지만 아직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2단계 경쟁’이나 ‘규격·가격 분리입찰’에서는 최저가 문제가 남아있고 300억원 이상 공사와 조달MAS 관련해서도 지나친 가격경쟁에 대한 우려들이 많다.

마진을 기대할 수 없는 최저가 낙찰제 방식으로는 기술개발과 융합을 통한 창조경제의 확산 또한 기대할 수 없다. 정부는 최저가 낙찰제 폐지가 정착될 수 있도록 현장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한편 적정가격으로 최고의 가치를 구매하는 합리적인 구매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확대 시행해 나가야 한다.

※이 글은 서울경제 6월30일자 오피니언면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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