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광훈(ASE코리아 본부장)

기업이 처한 경영환경에 따라 다르겠지만 국외에 생산기지를 두는 동기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해당 국가의 높은 진입 장벽을 피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동남아 등 임금이 싼 시장에 진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원가절감을 위해서다. 하지만 중국시장에서 경험했듯이 극복해야 할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고등학교 동창 중에 국내는 물론 중국에도 400여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중소기업 사장이 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모임에 나오지 않아 그의 근황이 궁금했다. 그와 친분이 있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중국 특유의 장벽을 극복하지 못하고 사업을 접었다는 것이었다.

국내라고 사업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손톱 밑의 가시가 많이 제거됐다고는 하지만, 일선 현장에서 체감하는 규제는 아직도 많다. 납세자를 대하는 일부 공무원 중에는 국민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 노동조합도 기업에 우호적이지 만은 않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는 도저히 채산성을 맞출 수 없는 한계기업을 제외하고는 국내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편이 나은 경우가 적지 않다. 의사소통 문제, 이질적인 문화 등은 국내에서 사업할 때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업계는 물론 같은 산업체 내의 협업체제를 해외에 있을 때는 활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소규모 출판사를 창업한다고 할 때, 인쇄나 제본 기계 또는 편집을 위한 고가의 컴퓨터나 편집프로그램을 구입할 필요가 없다. 분야별로 전문기업이 있어 모든 분야를 다 외주로 돌릴 수가 있다. 협업체제가 잘 구축돼 있어 가능한 것이다.

필자도 제품의 마진을 극대화하기 위해 해외 부품업체를 써 본 적이 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다. 납기도 그런대로 잘 지켰고 부품 품질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해당 부품이 필요한 완제품이 시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며 품귀 현상이 벌어졌다. 다급한 마음에 담당 영업사원에게 전화를 해보았지만 받지도 않았다. 소위 생산물량 할당(capacity allocation)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국내기업 같으면 협력업체를 압박(?)한다든가, 방문해 사정하는 등 강온 양면을 적절히 구사할 수 있지만 해외 업체다 보니 그렇지 못했다. 거리도 먼데다가 그 나라의 문화나 관습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어떤 방법을 써서 요구 사항을 관철할 지 막막하기만 했다.

더 큰 문제는 품질사고가 났을 때였다. 고객관련 품질문제가 나면 통상 현장실사를 한다. 하지만, 현장실사는 즉각적인 조치일 뿐 더 중요한 것은 사후관리가 잘 돼야 동일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품질과 공정을 안정시킬 수 있는데, 한두번의 방문과 실사로는 가능하지 않다.

16년 전 모 유명 월간지를 보니 ‘한국 자동차 산업 이대로 가면 망한다’라는 전문가의 진단을 담은 기사가 있었다. 지금보다 한국산 자동차의 인지도도 훨씬 낮고 규모도 작으며 품질도 열악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때였다.

 그러나 전문가의 예측과는 달리 우리 자동차 산업은 꾸준히 성장해 세계 6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선전하는 것은 관련 부품업계의 공도 크다.

대부분이 중소기업인 이들 업체는 기술 유출, 단가 인하 압력, 우수 인력 확보의 어려움을 이겨내며 성장해왔다. 자동차 업계는 대부분 마찬가지겠지만, 이들의 실행력과 속도는 가히 가공할 만하다. 제품이든 일이든 납기를 산정할 때 느슨하게 잡지 않고 절대 시간으로 계산한다. 물론 품질은 기본이다.

강한 기업이 생존하는 게 아니라 자동차 업계처럼 추진하고 모바일 업계처럼 일하며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기업이 살아남는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