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원(중소기업중앙회 소상공인정책실장)

2012년 2월 시작돼 도입 3년을 맞이한 지방자치단체의 대형마트 영업규제가 기로에 섰다. 서울고등법원이 지난달 12일 지방자치단체의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제도와 영업제한 처분이 위법하다며 대형마트의 손을 들어준 판결 때문이다.

서울고법이 대형마트의 손을 들어준 근거는 유통산업발전법의 본래 목적에도 불구하고 자구해석에 사로잡혀 ‘처분 대상인 대형마트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러한 판결은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290만 소상공인들의 마음을 더욱 얼어붙게 만들었다.

이런 서울고법의 판결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판결의 요지를 따져보자.

첫째, 서울고법은 행정처분의 대상이 대형마트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판단의 근거가 됐던 ‘점원의 도움 없이’ 단서는 본래 까르푸, 월마트 등 창고형 마트를 포괄하기 위해 포함된 것이었다. 법원의 판단대로라면 소상공인들은 지난 15년간 존재하지도 않는 대형마트를 규제하기 위해 유통법과 상생법 등을 입법하려 했다는 것이다.

둘째, 서울고법은 대형마트가 유통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사실을 인정할 만한 자료가 없고 오히려 유통질서 개선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판결 사흘 뒤인 12월16일 롯데마트·이마트 등의 대형유통업체는 납품업체에 대한 부당요구를 하다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됐다. 이렇듯 대형마트가 유통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는 사실이 자명한 까닭에 서울고법의 판단은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셋째, 서울고법은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업일 지정으로 전통시장 보호의 효과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연세대학교 정진욱, 최윤경 교수의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내린 결론이지만 이 조사결과의 문제점은 대형마트를 회원사로 두고 있는 한국체인스토어협회가 발주한 조사라는 데 있다. 서울고법이 한쪽으로 치우친 자료를 보고 판단을 내렸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특히, 서울고법은 소비자 선택권에 대해 1심과 이견을 보이고 있다. 1심에서는 소비자 선택권 보장을 대형마트 영업제한으로 달성되는 공익이라 판단했다.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일로 인해 소비자 선택권이 침해된다는 서울고법의 판단은 타당성도 있으나 대형마트의 시장 독식을 넋놓고 바라보는 것이 과연 소비자 선택권을 보호하는 것인지 강한 의문이 든다.

중소기업인들이 선택한 사자성어는 지난해 ‘기진맥진’에 이어 올해는 ‘필사즉생’이다. 극심한 내수부진과 엔저 여파 등 경영악재를 이겨내고자 중소기업들은 지난 1년간 지쳐버렸다. 새해가 돼도 중소기업의 봄은 요원해 보인다. 중소기업 10곳 중 8곳이 새해 경기를 전년과 같은 수준이거나 더 악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보다 더욱 열악한 상황에 있는 것이 소상공인들이다. 소상공인들은 봄을 기다리기는커녕 지친 몸으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최근 서울고등법원의 이번 판결은 현장에서 겨우겨우 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소상공인들의 맥을 탁 풀리게 한다.

대형마트 1곳이 문을 열면 같은 지역 내 소형 수퍼마켓 22곳이 문을 닫게 되고 문방구와 같은 소매업체들은 83곳이나 문을 닫는다고 한다. 그나마 2주에 한번씩 찾아오는 대형마트 의무휴일제가 지역 소상공인들에게는 숨 쉴 구멍이 됐지만 이번 판결로 그마저도 막힐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대규모점포 등과 중소유통업의 상생발전’이라는 유통산업발전법의 본 취지와 현실을 감안한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 주길 기대한다.

- 글 : 김정원(중소기업중앙회 소상공인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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