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아픈 정몽헌의 비극

대한민국처럼 기업인이 푸대접 받는 나라도 없다.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로 외국에 인식돼 있는 것도 기업인에 대한 사회적 시선 때문이다.
지금은 기업인을 무조건 매도하는 풍토는 많이 변했다. 하지만….
정몽헌의 비극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의 뜻대로 됐다면 그는 역사에 기념비적인 일을 한 대표적 기업인으로서 기록될 수도 있었다. 그의 비극을 가리켜 한국적 정경유착의 비극이라고 매스컴은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정경유착 이전에 ‘기업인=가진 자=미운 자’ 로 보는 시각이 이미 그 비극이 잉태될 토양을 마련하고 있었다. 기업인은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다. 실제로 기업은 세상을 살기 좋게 바꿔 놓고 있다.
개혁의 꿈에 불타는 사람들은 언론기관, 정치판, 운동권 등으로 유입된다.
그러다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기업인으로 변신하는 경우는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기업인의 그런 변신에서, 개혁의지는 쳐다보지도 않고 오로지 돈을 위해서라면 보통 사람이 하지 않는 짓(범죄까지도)도 서슴지 않는 비도덕적인 인물로 몰아부친다.

밤낮 안가리는 CEO들
훗날의 역사가 이렇게 말한다고 치자.
“기업인이요 재벌 2세인 정몽헌이 자살하던 그 시대 사람들은 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자살했겠냐고 묻는 것이 어리석은 시대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시대가 변하기를 기다린다. 웃기는 시대의 얘기라고,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에는 그런 일도 있지 않았겠느냐고, 우리가 흘러간 전설을 말하듯이 얘기할 수 있도록 시대가 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시대의 변화를 창출하기 위해 기업은 있는 것이다. 기업인의 노력은 밤과 낮을 가리지 않는다. 이병철이나 정주영이나 김우중이 아니라해도, 그가 아무리 작은 중소기업의 CEO라 하더라도 ‘밤낮을 안가리고 일에 몰두한 경영인 나와보라’고 하면 상암 월드컵 경기장도 좁을 것이다.

정치방보다 놀이방 여자방이 낫다
밤에 강좌를 여는 특수대학원에 가보라.
거기에서 만나는 CEO의 대부분이 밤낮을 안가리고 뛰는 대표선수들이다. 경영대학원, 개발대학원, 정책대학원 등 최근에 대학들이 만든 각종 대학원(?)으로 많은 CEO들이 사업적 성취를 위해 모인다.
밤에 강좌를 여는 특수대학원에는 가더라도 정치판은 가지 말라.
그 특수 대학원을 가리켜 어느 신문에선가 ‘공부방이 아니라 놀이방’이라고 매도했지만 그 놀이방이 ‘정치방’보다는 훨씬 낫다. 정치판은 다이너마이트다. 그것도 안전장치가 풀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다이너마이트.
CEO는 놀이방을 갈망정 다이너마이트가 장진된 정치판에는 접근하지 말라. 접근하면 정몽헌의 비극이 재연될 수도 있다. 물론 정경유착 없이 큰 사업을 이루기는 어려웠다는 낡은 시대의 유물을 모르지는 않는다.
또한 그 낡은 시대의 유물이 언제 다시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기업인은 그런 데서 초연해야 한다. 기업인이 정치와 상관 없이 초연한 시대가 올 때 그게 진짜 민주주의다.
여자 가까이 해서 재미 본 경영자는 없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지만, 정치방에 가느니 여자방에 가는 것이 훨씬 낫다. 그래야만 정몽헌처럼 자살방에서 뛰어내리지 않게 된다.
commukim@dreamwiz.com
코리아 드림미디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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