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키스트가 미국 최대의 농업협동조합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흔히 감귤류를 전문으로 하는 다국적 식품기업 정도로 알고 있는 이 회사는 1893년 시작돼 현재 캘리포니아주와 아리조나주의 6500여개 감귤류 재배농가를 회원으로 보유한 협동조합이다. 최근 20년간 매년 10억달러를 넘나드는 매출을 기록하고 있으며, 신선과일 판매가 매출의 70~8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선키스트는 1800년대 후반 오렌지 재배 농가를 힘들게 했던 유통 중개상들의 횡포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당시 중개상들은 잘못된 수요 예측이나 운반, 보관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리스크들을 고스란히 재배 농가의 부담으로 떠넘기며 폭리를 취하고 있었다. 이런 위기 상황에 집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남부 캘리포니아 오렌지 재배 농민들이 모여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이곳을 통해 과일 판매와 유통에 직접 나서기로 결정했다. 그후 1952년 2월 오늘날의 ‘선키스트(Sunkist Growers, Inc.)’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이렇게 탄생한 선키스트가 100년이 넘도록 세계적인 브랜드로서의 위상을 유지하는 비결은 철저한 품질관리에 있다. 과일에 붙이는 선키스트 스티커는 단순히 생산자를 표시하는 등록상표가 아니라 고품질의 상품에만 한정적으로 허용되는 신뢰의 상징이다. 또한 선과장 및 유통업체에는 조합 소속 품질검사원들이 매일 방문해 표준화된 품질관리 프로그램 준수 여부를 확인하고, 정기적으로 농업기술진이 방문해 프로그램을 점검하고 개선하기도 한다.
선키스트는 최초의 농산물 광고로도 유명하다. 당시 광고 대행을 맡았던 로드앤토머스社가 감귤류 과일에 어울리는 브랜드로 제안한 것이 현재의 이름 선키스트이다. 태양의 입맞춤(sun kissed)을 받은 오렌지, 즉 ‘태양의 에너지를 받아 더 맛있고 건강에도 좋다’라는 이미지를 함축하고 있다. 농산물에 생산조합의 이름이 아닌 이미지에 맞는 별도 브랜드를 적용한 것은 당시로서 매우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선키스트는 과일을 이용한 다양한 레시피를 개발해 소비를 촉진하기도 했다. 1916년에는 ‘오렌지를 마신다’(Drink an Orage)라는 광고 카피를 사용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오렌지 주스가 일상의 음료가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최근까지도 활발할 R&D를 통해 주스, 스낵, 분말 등 600여개에 이르는 연관 가공식품을 개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선키스트가 협동조합의 형태로 쟁쟁한 글로벌 식품기업과의 경쟁에서 생존한 것은 구성원들 간의 신뢰와 결속력 덕분이다. 이는 조합에 속한 개별 농가들이 공동 브랜드를 통한 조직화와 규모화로 인해 지속적인 수혜를 받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성과도 부담도 철저한 비례 배분방식을 채택하고, 조합원들의 자유로운 진입과 탈퇴를 보장함은 물론, 정기적으로 사업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해 갈등과 마찰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한 유통과 마케팅은 공동으로 하되 최소한의 운영비를 제외한 모든 이익은 조합이 아닌 조합원들에게 되돌려준다. 오늘날의 선키스트는 ‘모두의 생존을 위한 협력’이라는 설립 초기의 정신을 잃지 않았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김근영(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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