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도 이제는 GDP의 10% 내외를 복지에 지출하는 중간정도의 복지국가로 바뀌어 가고 있다. OECD 평균 복지지출 비율 20%에 비하면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법적으로 복지를 받아야 할 사람이 잘못 방치돼 아프거나 죽게 되면 정부가 호되게 야단맞을 정도의 복지는 하는 나라가 됐다. 이제는 선진국에서나 있을 법한 복지병 현상이 사회곳곳에서 나타나는가 하면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복지하느라 재정이 바닥났다는 소리도 들린다. 이렇게 온 나라가 복지로 떠들썩한데 자영업자에게는 그림의 떡 같이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제도는 건강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 노인요양보험 등 사회보험과 최저생계비 이하 빈곤층을 보호하기 위한 국민기초생활보장으로 구성돼 있다. 그중 사회보험료를 납입해야 보장을 받을 수 있는 사회보험이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이들 제도 중 건강보험 외에는 확실하게 보장된 것이 없다.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다 하더라도 돈이 많이 드는 암 등 중증질환에 걸리면 과중한 본인부담과 비급여로 시달리게 되니 안심하고 살 도리가 없다.
물론 국민연금 같은 경우, 소득이 있으면 당연히 가입하도록 되어 있지만 보험료가 소득의 9%이다 보니 지금 먹고 살기도 힘든 영세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보험료를 납입할 엄두도 못내는 경우가 많다.

복지 사각지대 놓인 자영업자

금년부터는 고용보험도 임의 가입할 수 있다고 하지만 가입과 수급조건이 까다로워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산재보험도 마찬가지다. 영세 자영업자의 경우는 임의 가입할 수 있지만 멀게만 느껴지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자영업자는 근로자에 비해 직업의 안정성이 낮다. 오늘은 손님이 넘쳐나고 있어도, 광우병 사태가 나면 고깃집이 흔들리고, 조류독감 한번 지나가면 문 닫는 치킨가게가 생기는 등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이런 요인 외에도 자영업 자체의 성격상, 개업해서 3년 이상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또 되는 집은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잘되지만 안 되는 집은 파리를 날릴 정도로 안 된다. 소득의 안정성을 기대할 수 있는 자영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자영업자의 사회보험 가입을 더더욱 힘들게 만드는 것은 ‘소득파악이 힘든 사람’이라는 점이다. 자영업자는 소득에 비해 세금을 적게 내는 사람 혹은 사회보험 적용을 기피하려는 사람으로 몰리는 경우가 많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영업자에게 사회보장을 제대로 못해주는 정부가 책망 받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충정을 이해 못하고 협조하지 않는 자영업자가 죄인이 되기 십상이다.

자영업자 위한 복지체계 필요

이렇게 자영업자에 대한 소득을 파악하기 힘든 것은 자영업자조차도 자신의 소득을 알기 힘들다는 이유도 있다. 자영업자는 사업초기에 설립자금을 투자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임대료, 재료비, 인건비 등의 비용이 항상 수반되기 때문에 매출액과 영업이익을 식별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소득이 일정하고 안정적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회보험을 그대로 자영업에 적용해서는 자영업자가 제대로 적응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반대로 유리지갑이라고 하는 근로자 계층으로부터 사회보험이 잘못된 소득재분배를 만든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자영업자에게 일시적으로 바닥까지 훤하게 보이도록 투명한 경영을 하도록 강요하기도 어렵다.
우리나라의 자영업자는 1997년 경제위기 때 일시적으로 증가했다가 그 이후 감소추세에 접어들었으나 최근 취업자의 약 30% 선까지 늘어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자영업자가 늘어나는 추세가 유지될 수도 있다.
따라서 취업자의 30%선인 자영업자를 위한 사회보장 시스템에 대한 새로운 구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질병, 재해, 파산, 노령 등 각종 사회적 위험에서 자영업자를 지킬 수 있는 종합적인 보장 시스템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정부는 자영업자를 더 이상 근로자 중심의 사회보험 제도의 변방에 두지 말고 자영업자가 중심 대상인 사회보장 시스템을 구축해 보다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사회보장의 사각지대가 대폭 감소될 수 있을 것이다.

김용하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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