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전국을 들끓게 하던 월드컵 경기가 끝난 뒤에도 상당기간 월드컵의 뜨거운 열기가 이어진 탓에 지난 여름은 별로 더위를 느끼지도 못하고 후딱 지나간 듯 했건만, 뒤이어 태풍 ‘루사’가 한반도를 관통하며 큰 피해를 입히고 지나가면서 전국이 수해와 이에 따른 복구문제로 9월 내내 어수선하기만 해, 대∼한민국의 함성으로 전국을 들썩이게 하던 월드컵 열기도 어느덧 태풍 ‘루사’와 더불어 스러져 가버린 듯 하다.
10월 이후엔 월드컵의 바톤을 아시안 게임이 이어 받아 전국의 시선을 부산으로 모이게 했다. 이번 아시안 게임에는 국내에서 개최된 국제대회에 북한 팀이 최초로 참가해 당초 부산 시민들로부터 외면 받을까 우려되던 아시안 게임이 미모의 북한 응원단을 좇아 시민들이 경기장마다 찾아다니는 통에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사실 지난 월드컵에서 온 국민들이 감격해 마지않던 큰 이유 중 하나는 전 세계인이 지켜보고 있는 스포츠 제전에서 우리나라가 4강이란 꿈같은 성적을 거둠으로서 그 혹독하던 IMF 경제위기의 와중에서도 한국과 한국인들은 결코 굴하지 않고 이렇게 훌륭하게 재기했다는 것을 보여 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북한 팀에 열렬히 응원을 보냈던 것도 국민의 정부가 주도한 햇볕정책이 결실을 거둬 대결을 지양하고 실질적으로 스포츠를 통한 남북간 교류가 이뤄졌으며 나아가 이것이 앞으로 남북통일의 초석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서였다.
그러나 한편으론 올해 내내 스포츠 행사에만 국민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고 정부의 행정력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은 생산적 활동에 집중돼야 할 국력을 일과성 행사에 지나치게 소모하는 게 아닌가 싶어 뒷맛이 개운치 않다.

스포츠 행사 지나친 열광
더욱이 우리는 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를 전후해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한 것처럼 사회전체가 집단최면에 걸린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었지만, 다음해 봄을 정점으로 우리 경제가 침체에 빠지기 시작해 이어지는 90년대 내내 큰 어려움을 겪었던 전례를 기억하고 있다. 88올림픽 이후 우리 경제가 어려움을 겪었던 가장 큰 이유는 외국인들도 지적했듯이 ‘한국인들이 조그만 성취에 도취돼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트렸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월드컵 개최이후 최근까지 우리 사회의 분위기와 행동들은 어떠한가? 88올림픽 이후에도 그랬듯이, 그간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이뤄낸 성취에 대한 어려움을 보상하고 분배하려는 자기보상적 사회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점에 우려를 금할 수 없게 한다.
무엇보다 우리 한국은 월드컵과 아시안 게임에서 훌륭한 성과를 거둔 나라인 만큼 세계 일류국가가 됐다는 인식이 지나쳐서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흐리게 하고 이에 대한 대응을 그르치게 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러면 현재 우리나라는 어떤 상태에 있는 것인가? 외환위기 5주년을 맞아 최근에 열린 국제학술대회에서 국내 경제학자들은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경제회복은 일시적인 대외 경제여건과 재정확대에 힘입은 것이며 언제든지 금융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으며, 외국인 학자들도 “한국의 경제개혁은 절반의 성공이며, 제2의 외환위기를 피하려면 기업부문을 더욱 개혁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생산적 개혁 뒷받침을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에 전개되고 있는 선진 각국의 심각한 디플레이션과 주가 폭락 사태는 가뜩이나 대외적 영향에 취약하기만 한 우리 경제를 다시 침체와 위기에 빠뜨릴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런데도 최근까지 정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경제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는 것을 대내외에 과시하기에 바쁘고, 나아가 개별기업들이 위기극복에 따른 기업성과를 어떻게 배분해야 할 것인지 훈수하기에 골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정부의 행태는 현 경제상태에 대한 지나치게 안이한 현실인식에 근거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현 정부에서 기업관련 개혁적 조치로 서둘러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주5일 근무제만 하더라도 현 경제상태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어떠하며, 어디에 정책적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앞서 언급한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을 성공적으로 잘 치렀다고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고 그 위상에 걸맞게 우리의 삶의 질이 저절로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먼저 질 높은 삶의 기반이 되는 경제적 성취의 토대를 갖추는 것이 선행돼야만 한다.
우리는 이전 정부가 임기 말에 초래한 경제위기를 잘 기억하고 있다. 현 정부도 임기말에 인기만을 염두에 두고 경제적 성취보다 삶의 질을 우선하는 정책을 강행함으로써 또다른 경제 위기의 단초를 제공할 것이 아니라, 기업들이 생산적 개혁을 이룰 수 있는 내부적 여건과 이에 긍정적인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 주는 것을 자신의 마지막 역할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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