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협상이 여러 고비를 넘기고 극적으로 타결됐다. 합창(Chorus)과 발음이 같은 KORUS(한·미) FTA는 두 나라가 합창을 하는 것 같아 우선 앞길이 밝아 보인다. “FTA는 정치,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 “개방하면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지만 개방하지 않으면 실패만 있다.” 그동안 반(反)시장적 정책을 펴는 것 아닌가 의심을 받았던 노무현 대통령의 언급이다. 그래서 대통령답다는 찬사가 비판적인 언론과 야당에서 나왔다.
FTA협상이 타결되자 자동차와 섬유업종은 웃을 것이고 농산물은 울 것이라는 등 손익계산이 한창이다. 업종별 분야별로 당연히 명암이 엇갈리겠지만 국민경제 전체가 얻는 이익에 주목해야 한다. 현시점에서의 손익계산은 별 의미가 없다. 자녀를 공부시킬 때 당장 들어가는 학비를 따져 손익계산 하는 부모는 없다. 자녀가 훌륭한 인재로 자라기를 기대하며 또 그 가능성을 보고 교육투자를 하는 것이다. FTA를 맺는 것도 이와 다를 바 없다.
한·미 FTA는 한국과 미국의 국가 시스템을 통째로 연결하는 거대한 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대응 여하에 따라 세계 최대시장인 미국이 우리의 앞마당이 될 수 있는 것이지 FTA자체가 모든 문제를 푸는 열쇠는 아니다. 상품과 서비스의 교역증대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의 비합리적인 제도와 규칙, 관행을 국제규범(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게 끌어올려 국가경쟁력과 국격(國格)을 높이는 일이다.
한·미 FTA 협상타결 소식에 중국과 일본은 놀라기도 하고 부러워하거나 당황해하고 있다. 한국이 미국시장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됨은 물론 동북아 통상허브(hub)로 떠오르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일본과 중국은 한국과 FTA를 맺자는 러브 콜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의 FTA 반대자들은 ‘제2의 국치’라며 경제주권(主權)을 상실했다고 비난한다. 얼마 전까지 집권여당의 대표였거나 국무위원을 지낸 핵심세력들까지 FTA를 반대한다며 단식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
한국의 쇠고기 값은 세계에서 제일 비싸고 돼지고기 값 역시 세계 최고수준이다. 웬만한 중산층도 사 먹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뼛조각을 이유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막는다고 한우 농가가 보호되는 게 아니다. 호주와 뉴질랜드 쇠고기가 국내시장의 50%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쇠고기 시장은 이미 개방돼 있다. 광우병은 당연히 막아야하지만 광우병을 빌미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막겠다는 건 억지에 가깝다.
더욱이 노동자들이 쇠고기 수입을 반대한다. 애국심 때문인가, 아니면 반미(反美)운동인가를 가늠하기 어렵다. 경제논리는 실종되고 정치논리에 휘말려있는 것 같다. 농민의 어려움은 국내정책으로 보완할 일이지, 국제가격의 4~5배에 이르는 농산물을 사 먹으라고 소비자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세계화는 크게 진전돼가고 있고 이미 중국으로부터 값싼 농산물을 수입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 소비자들이 세계에서 제일 비싼 쇠고기를 먹어야하는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다.
우리는 세계의 움직임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은 동북아 패권을 다투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어 이 지역의 안정이 생존의 전제조건이다. 날로 복잡해지는 동아시아지역 역학관계의 변동 속에서 한·미 FTA는 경제동맹에 안보동맹의 성격까지 갖는다. 이 얼마나 대단한 성과인가.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됐지만 양국 국회의 비준을 거쳐 정식 발효되기까지 갈 길이 멀다. 우선 정치권이 국익을 따지기는 커녕 이상한 논리로 얄팍한 표 계산이나 하면서 발목 잡아서는 안 된다. 한·미 FTA는 미래로 가는 지름길이다. 세계를 향해 뛰어야만 살아남는다.

류동길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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