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보다 가슴을 설레 이게 하는 게 있을까. 목련꽃 향기가 날리는 계절에 경험한 사랑은 평생 추억으로 남는다. 필자가 아는 S씨는 30세를 갓 넘긴 미혼여성이다. 그녀의 꿈은 좋은 신랑감을 만나 결혼하는 게 아니다. 좋은 집을 사고 멋진 여행을 다니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폴크스바겐의 신형 비틀카를 사는 것이다. 그것도 연두색의 앙증맞은 차를. 그녀에게 비틀카는 꿈의 선물이자 보물 자체다. 비틀카를 몰 생각만 해도 가슴이 쿵쾅쿵쾅 뛴다.
60대 후반의 한 기업인은 집무실에 뱅앤올룹슨 오디오를 놓고 있다. 출근할 때 보기만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사운드도 좋지만 디자인 자체가 예술이다. 컬러풀한 색상에 CD를 세워서 장착할 수 있는 혁신적인 디자인. 이는 상품이 아니다 예술작품이라고 그는 항상 칭찬한다.
비틀카와 뱅앤올룹슨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둘다 디자인이 빼어나다는 것이다. 조금만 디자인 감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필’이 가슴에 팍 꽂힐 정도다. 디자인은 이제 단순한 모양이 아니다. 품질이나 가격을 뛰어넘는 경쟁력의 최고의 원천이다.
오죽하면 모 그룹 회장은 세계 디자인의 메카인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임원회의를 할 정도일까.
세계 시장은 양극화됐다. 얼마전 방한한 세계적인 컨설팅업체 보스턴컨설팅그룹의 마이클 실버스타인 수석부사장도 이를 강조했다. 소비양극화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그는 소비고급화를‘트레이딩 업’, 소비실속화와 저가제품 선호현상을 ‘트레이딩 다운’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이는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소비행태라고 갈파했다.
개개인의 소득이 높아져 고급품을 찾는 성향이 높아지지만 한 개인의 성향도 양극화된다는 것. 미국에서는 차는 BMW를 타면서 할인점을 찾아 50센트를 깎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신문이나 잡지에 부착된 할인쿠폰을 모아서 식료품을 한꺼번에 싸게 산 뒤 이를 통해 절약한 돈으로 나중에 캐리비언지역의 멋진 크루즈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왜 그렇게 절약한 돈으로 비싼 여행을 떠나고 벤츠나 BMW를 사느냐고 따지면 그는 합리적으로 답변치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현재의 트렌드다. 그 결과는 중가시장의 붕괴다.
중소기업들도 트렌드를 빨리 받아들여야 한다. 저가품을 만들던지 아니면 고급화전략을 세워야 한다. 어중간한 가격대의 어중간한 품질의 제품을 만들면 앞으로 몇 년간은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게 실버스타인 부사장의 예리한 지적이다.
그러면 저가품으로 가는 전략이 유용할까. 이건 쉽지 않다. 중국과 인도 베트남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과 경쟁해서 이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고급화해야 하는데 하루아침에 가능할까. 대안은 바로 디자인의 고급화다. 의류 가구 등은 물론 휴대폰 TV 노트북 DMB폰 등 가전제품 정보통신제품도 기능보다는 디자인으로 승부하는 시대다.
중소기업들이 고급 디자이너들을 대거 채용할 수는 없다. 대신 산업디자인업체들이 많다. 몇몇 유명한 디자인업체와 이름은 없지만 실력은 출중한 디자인회사들이 수 백 개나 있다. 이들에 의뢰해 좋은 디자인의 제품을 채택하면 된다. 당장 돈이 없다면 해당제품의 매출이나 순이익의 일정 비율을 나누는 방법도 있다. 국가에서 세운 디자인진흥원도 있다.
한가지 다행한 것은 한국의 디자인은 창조적인 게 많다.‘크리에이티브’는 디자인의 생명인데 한국인은 기질상 창조적이다.
세계적으로 우수한 디자인을 많이 만든다. 얼마전 빌게이츠가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제품 전시회에서 극찬한 MP3플레이어의 디자인도 바로 한국인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빌게이츠는 “이런 디자인이 바로 디지털시대를 열어젖힌다”고 칭찬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5000달러 이하이면 먹고살기 급급해 디자인에 눈을 못 뜨지만 5000달러에서 1만달러 수준이 되면 서서히 굿 디자인에 대한 안목이 생기기 시작하고 1만달러를 돌파하면 이런 수요가 급증한다는 게 디자인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게다가 2만달러를 넘어서면 먹고사는 것에 대한 관심보다는 아름답고 예쁘고 럭셔리한 제품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한다. 이런 추세를 빨리 읽고 대안을 마련하는게 중소기업 경영자들이 올해 할일이 아닐까. 첫사랑보다 강렬한 감동을 불러 일으키는 굿디자인제품을 만드는게….

김낙훈
한경비즈니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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