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에서 사람을 채용하는데 두 사람이 응모했다. 한 사람은 서울의 유명대학을 나온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고졸자다. 둘다 초봉으로 월급 120만원을 받고 일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과연 누굴 채용할까. 또 다른 채용공고에서 한 사람은 20대 후반의 팔팔한 젊은이이고 한사람은 노년의 고개에 접어든 60세가 응모했다. 누굴 뽑을까.
서울 성수동 삼성문화인쇄의 조영승 사장은 거침없이 답한다. 같은 조건이면 고졸자를, 나이 많은 사람을 뽑는다고. 왜냐면 그의 지론은 간단하다. 60세인 사람을 뽑아주면 자기같이 나이든 사람을 채용해준걸 고마워해 더 일찍 출근, 조금이라도 더 늦게 일한다고 대답한다.

기술과 건강있으면 정년제한 무의미

삼성문화인쇄는 책과 기업체 판촉물 캘린더를 만드는 업체. 인원은 60명에 연매출액 70억원.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제작해온 인쇄물은 최고급품들이다. 그동안 취급해온 제품은 일본항공(JAL)캘린더를 비롯해 마루베니 닛쇼이와이 등 일본 종합상사의 캘린더와 브로슈어, 국내 100여개 업체 브로슈어 등이다.
고급인쇄물을 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첨단설비 장기근속자 그리고 경영자의 집념이라는 3박자가 맞아 떨어진데 따른 것이다. 공장에는 대당 10억원대의 고가장비가 있다. 미쓰비시의 4색 5색 6색 오프셋인쇄기를 비롯, 독일제 스탈접지기 컴퓨터 제판기 등이 1층과 2층 3층 공장에 놓여 있다. 이중 삼원색으로 재현하기 힘든 중간색을 인쇄할 수 있는 6색 오프셋인쇄기는 국내에 몇 대 없는 장비다. 펄 색상 도장 등 고급자동차의 색상도 그대로 나타낸다.
근로자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20년에 이른다. 50년 동안 함께 일한 근로자도 7명이나 된다. 이들의 노하우가 어우러져 최고급품질의 제품을 쏟아낸다. 종업원들은 건강만 허락하면 이 회사에서 100세까지라도 근무할 수 있다. 조 사장은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조 사장처럼 얼핏 보면 상식에 맞지 않는 ‘거꾸로 경영’을 하는 중소 벤처기업인들이 종종 있다.
한국열처리의 이희영 회장(66)도 마찬가지다. 그는 몇 년전 외국인근로자들을 모두 내 보냈다.대신 한국인들로 채웠다. 중소기업이라면 누구나 임금이 저렴한 외국인근로자들을 선호한다. 한푼이라도 원가를 절약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회장이 외국인을 모두 내보낸 것은 숙련근로자들의 대가 끊길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가 경영하는 한국열처리는 세계 정상급 열처리업체다. 특히 항공기부품 열처리는 전세계적으로 10여개사만이 인증을 받았을 정도로 까다로운 분야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 경쟁력을 자랑하는 일본조차도 항공기부품 열처리업체는 2개사에 불과할 정도다.
그는 요즘 중소제조업, 특히 기반기술산업에 대해 너무도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다. 열처리 주물 단조 금형 도금 등 이른바 기반기술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다. 기업인이건 근로자건 이 분야에 진출하려 하지 않고 있다. 기존업체들도 대부분 설비투자에 관심이 없다.

우리 손으로 기술 지켜야

그는 “열처리는 모두들 3D업종이라고 말합니다. 내국인 근로자들이 일을 꺼리다보니 대부분 외국인들로 현장을 채웁니다. 하지만 외국인들이야 언젠가 자기 나라로 돌아가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 땅의 열처리 산업도 끝나는 것 이지요”
이들의 공통점은 ‘거꾸로 경영’이다.이들의 거꾸로 경영은 중소기업의 현실이 그만큼 열악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젊은이들이 생산현장으로 오지 않고 오더라도 잠깐 있다가 그만둔다. 그러다보니 나이 많은 사람을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또 생산현장이 외국인들로 넘쳐나니 의식이 있는 일부 기업인들은 근로자들의 대가 끊길 것을 우려해 한국인들로 채우는 것이다.
이희영 회장은 “기계 자동차 항공 조선 방위산업 등 주력산업이 지속 성장하려면 열처리 도금 주문 단조 금형 등 산업의 뿌리인 이들 기반기술이 탄탄하게 성장해야 한다”며 “젊은이들이 이 분야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간곡히 당부한다. 이 회장의 당부는 그만의 생각이 아니다. 이땅의 모든 중소기업인들의 오래된 호소다. 그런 점에서 젊은이 못지않게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관계당국에서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또 이제는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놔야 할 때다.

김낙훈
한경비즈니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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