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의 호미곶 일출을 생각하면서 먼 길을 나선다. 우선 북부해수욕장 근처에 있는 낙서등대라는 이색등대를 찾는다. 울릉도 배를 타는 선착장 너머 구항 방파제를 따라 10여분 정도 걸어가니 길이 끝나는 지점에 여느 곳에서나 흔히 만날 수 있는 등대가 서 있다. 등대 저 너머로 포항제철에서 품어내는 붉은 연기가 하늘 향해 치솟고 있다. 저 열기는 몇 도쯤이나 될까?

구항방파제의 낙서등대=추억만들기

낚시객들이나 인근에서 산책 나온 사람들 이외에도 일부러 찾는 여행객들도 눈에 띈다. 보편적으로 등대에는 관광객과 낚시꾼들의 불법 낙서를 해대는 통에 골머리였는데, 차라리 이렇게 테마를 만들어두니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갖는다. ‘추억만들기’라고 써진 낙서판에는 젊음이 넘쳐난다. 주로 연인들의 사랑이야기의 낙서가 주종이고, 그 외에도 군대 이야기, 다이어트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등대와 그 옆에 있는 테트라포드(일명 삼발이)에도 많이 그려 놓았다. 평범한 등대도, 마치 어린왕자 속의 장미와 같이 특별하다. 흔한 등대에 이름을 명명하거나 모양을 독특하게 해서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등대가 된 것이 아닌가?

가지각색의 어류가 즐비한 죽도시장

찬바람이 세차게 불어대는 방파제를 비껴서 죽도시장(북구 죽도동)을 찾아 나선다. 시내에 있는 붙박이 어시장이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겠는가. 그래서인지 이곳은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장 통은 왁자하다. 생선을 파는 상인들이 손님의 소매 깃을 붙잡는 소리가 뒤섞여 시장 통은 하루 종일 활기가 넘친다. 요즘 같은 겨울이 아니고서도 과메기는 흔하다. 과메기뿐 아니라 대게, 전복, 피문어, 고래 고기 등등. 때로는 낯익은, 때로는 낯선 고기들이 질펀하게 시장 통에 널브러지거나 진열대나 수족관에서 오가는 손님을 유혹한다. 상인들의 상법도 겉으로 보기엔 비슷하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조금씩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과메기를 파는 상가에서는 대부분 맛보기를 내놓고 있는데, 양념장이 각자 다르다. 그 양념장 맛에 따라 팔고 사는 행위가 많이 차이가 난다. 필자는 이곳저곳을 살펴보다가 포항구룡포 과메기(010-9811-6159)집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결국은 양념장과 비린내가 나지 않은 과메기 때문이었는데, 그저 파는 초고추장에 깨소금만 넣었다는데도 그 맛이 괜찮다. 박근혜 의원과 악수하는 사진을 걸어두고, 전라도 말씨를 쓰는 아낙의 장사수완이 보통이 아닌데, 그건 차체하고 일단 맛이 괜찮다는 것이 우선이다. 포장도 가능하다. 간단하게 먹을 수 있도록 가위로 잘라주고 양념과 야채를 넣어 능숙하게 비닐봉지에 담아준다. 대게는 찜 가격은 따로 받지 않는다고 해서 다섯 마리 정도를 구입한다. 20여분 정도 대게 찜을 기다리면서 이리저리 시장 통을 배회하다보니 가판에서 파는 가격보다 더 싸게 수족관에서 살아있는 대게를 파는 곳이 한둘이 아니다. 좀더 돌아보면서 사도 괜찮을 일인 것을.

영일만으로 향하는 길에 만나는 일몰과 야경
어수선한 시장 통을 비껴서 영일만 범꼬리라고 불려지는 호미곶(경북 포항시 대보리)으로 발길을 돌린다. 어차피 일출을 볼 수 없는 시간이므로 도구-임곡쪽 해안 길로 발길을 움직인다. 대보 항까지 12km 정도 되는 해안 길은 꽤 멋지다. 들어가는 초입의 길과 간간히 못 보던 잘 지어놓은 숙박동 이외에는 딱히 변한 모습은 없다. 고갯길은 숨이 끊어지듯 다시 이어지면서 한없이 넓게 펼쳐지는 바다를 보여주는 그곳에 해가 진다. 이곳은 지형 상 일출을 볼 수 없는 곳. 바다 너머 포항제철에도 불이 환해지고 어촌 마을 가로등 불빛이 짙어지면서 붉은 노을은 흐릿하게 사라진다. 어느 때부터는 온전한 것보다는 다 불살라버리고 난 후의 모습에 관심을 갖게 된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할퀴지만 오랫동안 산자락을 불태우던 노을과 제철의 따뜻한 불빛 덕분인지 얼굴에는 홍조가 사라지지 않는다. 봄철 유채꽃과 보리밭이 출렁거린다는 구만리의 평원을 지나면 대보항이다. 일명 호미곶이라 불리는 이곳은 16세기 조선 명종 때 풍수지리학자인 남사고가 “산수비에서 한반도는 백두산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형상으로, 백두산은 호랑이 코, 호미곶은 호랑이 꼬리에 해당한다”고 기술하면서 천하의 명당이라 했다. 또 고산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만들면서 국토의 최동단을 측정하기 위해 영일만 호미곶을 일곱 번이나 답사 측정했다고 한다. 꼬리부분에 이르는 대보항은 오는 길에서 만난 어촌보다는 제법 큰 마을이다. 어느 바닷가 마을에서 늘 볼 수 있는 모습들.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들, 횟집 등등. 어부들은 해풍이 없는 날에는 촉수 높은 불빛을 밝히며 바다 위를 물들이고 있다. 빨간색 등대는 밤이 되면 고깃배들에게 반짝반짝 불빛 신호를 보내준다. 아무 음식점에 들어가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숙소를 잡고 항구에 나가본다. 고깃배 불을 밝히고 수리를 하고 있는 어부들의 손놀림이 부산하다. 이런 날은 해돋이고 뭐고 간에 그저 파도소리 들으며 쓰디쓴 소주잔을 기울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안개를 가르며 떠오르는 해가 상생의 손가락 안으로 ‘쏘옥’

여명이 밝기도 전에 상생의 손앞으로는 해돋이를 보려는 사람들이 제법 많이 찾아든다. 워낙 알려진 일출 명소이기 때문이리. 2000년 새천년을 기념하면서 바다 속에 만들어 놓은 대형의 상생의 손. 엄지와 검지 사이를 둥글게 말아서 들어올린, 그 사이로 올라오는 해모양을 잡기 위해 자리싸움도 만만치 않다. 해는, 촉수 낮은 전열등처럼 힘차진 않았지만 그런대로 자기 모습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새천년 공원에도 똑같은 손 조형물이 있고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등대에 관한 유물과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 등대박물관(경상북도 기념물 제39호)도 있다. 하지만 이미 이곳에서 시간을 지체할 필요는 없다. 대천-강사-다무포-석병-삼정-구룡포를 향해 달려간다. 붉은 해는 여전히 안개에 가려진채 맑지 않은 햇살을 비쳐준다. 그러면 어떠리. 해안 길에는 과메기와 오징어가 주절주절 말려지고 바닷가 마을사람들의 손길은 분주하다. 이름도 알 수 없는 한 바닷가에 잠시 차를 멈추고 어부들의 바쁜 손놀림을 바라본다. 줄에 꿴 새끼 멍게를 양식하기 위해서도 무수한 손길을 요구한다. 바닷물을 퍼 올리는 할머니, 과메기를 말리는 청년, 끼룩거리는 갈매기 떼가 아침에는 유난히도 활발해 보인다.

구룡포 어판장에서는 대게경 매가 한창

드디어 구룡포. 동해남부 어항의 집결지로 많은 어선이 출항과 회항을 하고 있는 대형항구다. 회항하는 어선들로 구룡포는 새벽부터 활기가 넘쳐난다. 항구 한 편에서는 멸치를 삶고 말리는 아낙들의 손놀림이 부산하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허름한 어판장. 포항하면 과메기가 우선이지만 이곳 아침 경매장에는 대게가 지천이다.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인근 영덕, 울진 등에서도 이곳에서 사갖고 간다고 하니, 그 속내야 알 수 없는 일. 어찌됐든 능숙하게 경매를 하는 사람들의 안광에서는 빛이 난다. 모두가 돈과 연결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게를 정리하는 틈사이로 눈치를 보면서 할머니 한분이 비닐봉지를 들고 떨어진 다리 줍기에 여념이 없다. 떨어진 다리만 주워 삶아 먹어도 충분할 듯하다.

■자가 운전=서울 기점-영동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김천 분기점에서 경부선 이용-경주에서 포항간 고속도로 이용-포항시내에서 북부해수욕장, 낙서등대, 죽도시장 보고 나서 포항제철로 난 31번국도 이용. 제철 지나서 구룡포 방면으로 가다가 약전 삼거리에서 925번 지방도 이용.
■별미집과 숙박=대보항에는 괜찮은 음식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잘 골라가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다. 그 외 조식은 구룡포항의 동림복식당(054-276-2333)이나 함흥복집(054-276-2348)을 이용하면 된다. 그 외에 해녀전복집(054-276-2338), 할매전복집(054-276-3231)에서는 자연산 전복죽을 즐길 수 있다. 그 외에도 과메기는 어느 곳에서나 먹을 수 있으며 고래고기는 모모식당(054-276-2727), 대게요리, 활어회를 즐길 곳이 여럿 있다. 숙박은 대보항의 새로 지은 한나모텔(054-284-9815)은 침구도 깔끔하고 방도 따뜻하다. 그 외 해송(054-284-8246)이나 대보해수탕 옆에 있는 해수장(284-8044), 송림장(054-284-9445) 등을 이용하고 민박도 여러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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