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전라북도 팸투어(Fam). 팸투어(Familiarization Tour)는 원래 여행사에서 거래여행사 직원들에게 친목도모 또는 리베이트 수단으로 무료여행을 실시한데서 유래됐는데, 사전답사여행이란 의미로 더 많이 사용된다. 지자체가 되면서부터 전남에서 시작된 팸투어가 일상화된 것이다. 모든 것을 주관해서 보여주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하니 프리랜서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도 시들해진다. 여행경비 많이 들어가는 요즘, 그게 웬 떡이냐 하겠지만, 가본 장소 또 가고, 사람들과 어울려 공동으로 느껴야 하는 일 등. 배가 불러서는 아닐진대, 내놓은 테마가 썩 맘에 들지 않으면 참여하지 않게 된다. 그럼에도 전북 팸투어를 신청한 것은 잠시 바람이라도 쏘여야겠다는 생각이었고, 군산의 비응도와 신시도 코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에서 출발한 관광버스는 오찬장소인 서천 하구언까지 예상시간이 초과된 것은 물론이고, 아직 미개통된 새만금 도로는 부안까지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해 버리고 말았다.
새만금에서의 시작
군산-부안간 새만금 공사구간을 특별한 혜택을 받았다는 주체자측의 자랑이 무색할 정도로 두 섬은 특별난 게 없다. 게다가 일반인들이 이 길을 통과하려면 아직도 몇 년이 더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볼거리 없는 공사도로에서의 시간낭비는 물론이고 전시관에서의 사업설명, 영상자료로 이어질 때는 슬슬 부아가 치밀기 시작한다.
군산도 부안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그저 ‘땜방’식 취재가 될 게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한사람씩 볼멘 목소리가 터져 나오면서 일정을 수정하기로 했다. 이순신 세트장을 보고 솔 섬에서 낙조를 보자로 의견을 굳혔고, 필자는 부안에 오면 박형진 시인(그는 농사꾼이면서 시인이라서 농부시인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에게 굳이 농부시인이라는 칭호를 붙이고 싶지 않다. 교수시인이든, 주부시인이든, 의사시인이든, 단지 내 눈에는 시인일 뿐이니 말이다)을 만나고 싶다고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를 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팸투어에 참가한 지역 신문 기자가 연락을 취해놓은 것이다.
솔 섬 낙조의 행운
해튼, 그날 날씨는 매우 좋아서 채석강이든, 적벽강 주변이든 낙조 사진은 매우 좋을 날이었는데, 솔 섬으로 장소를 결정했다. 짧은 겨울 날씨는 낙조시간을 재촉하고 있어 이순신 세트장도 주마간산에 멈추었다. 솔 섬 앞에는 무수히 많은 사진가들이 몰려 진을 치고 있다. 솔 섬 우측 소나무 사이, 저 너머 형제 섬으로 해가 진다. 태양은 많이 붉었고, 보기 힘들다는 오메가를 만들고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해가 지고 격포항 주변의 그린횟집(063-584-0232)에 미리 차려 놓은 음식 앞에 앉았다. 여러 사람이 모여도 같이 움직이는 것은 서로 아는 사람들끼리다. 자기 무리를 벗어나서 다른 사람과 친해지는 경우는 드물다. 결혼식장과 마찬가지로 여러 그룹이 모이면 혼자 온 사람은 계속 혼자 다녀야만 한다. 군중속의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에게 눈길을 주면서, 말문을 열어주는 사람은 드물다. 시인에게 연락만 취해놓은 채, 이리저리 말문을 트느라 그가 온다는 것을 깜박 잊어버리고 있었다. 입구에 키가 큰 한 사람이 어색한 웃음을 짓고 우뚝 서 있을 때에서야 시인이 온 것을 알아차렸다. 거나하게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결국 손님 모신 사람은 필자이니 내 차지다. 단지 책 한권을 읽어본 독자입장에서 그를 맞이하고 보니, 어디서부터 말문을 열어야 할지 난감하다.
시인과의 대화
상대방을 알아야 질문이 들어가고 그에 대한 답변을 얻는 것인데, 이번 여행길에는 전혀 목적하지 않은 사람을 앞에 두고, 기억도 가물가물(읽을 때는 그의 걸쭉한 사투리와 찰진 문장력에 반했었고, 꼭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은 갖고 있음은 확실했다)하니 말문이 트이질 않는다. ‘꼭 만나고 싶었다. 정말 대단한 필력이다’라는 바람에 겉도는 이야기만 해댄다. 시인은 글만큼이나 말을 잘한다. 이곳(모항)에서 몇 대가 살아오고 서울살이 1년 남짓이 전부라지만 그는 이것저것 막힘없이 조근조근, 차분하게 말을 잘 하고 책속의 걸쭉한 사투리조차 표준어처럼 들린다.
식당에서 주섬주섬 싸준 남은 안주와 술잔을 채석강 앞바다의 문 닫은 가게 앞 평상에 펼쳐놓고 술잔을 기울인다. 이번 여행길에는 마시지 않기로 작정한 일이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깨지고 만 것이다. 조심조심 시인의 문지방을 넘어가야 하는데, 대화는 이상하게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하지 말아야 할 넋두리로 변해가고 있다. 마치 상대방의 독자라는 이유만으로 한없이 작아지고 있는 것 같다. 술잔이 깊어지지만 느껴지는 체감온도는 크다. 시인은 시 한수를 읊는다. 글자로 보는 것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처연한 감상이 가슴 밑바닥부터 울거져 나온다. 시인의 감성이 전염된 것인지, 술기운이 오른다. 남은 소주 한 병을 더 따서 마시자고 할 무렵 다행히 후배가 나왔고, 그는 그 자리를 떠났다. 더 길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오랫동안 마신 술의 후유증이다. 이제는 마셔서 즐거운 술자리보다는 그 뒷날의 피곤함을 걱정하는 나이가 됐다. 후배들이 시 한편이 적힌 종이를 내민다. 아직 출간되지 않은 시집 속에 채어질 “문을 바르고”라는 시 한편이다.
풀 쑤어 문 바르고/아궁이에 불 지피고 들어앉아/어두워도 밝기만 한/창문을 바라본다.
문살마다 희미하게/얼비치는 꽃무늬/스러질 듯
문밖에선/귀또리가 세나보다
옛 애인에게/묵은 편지 한 장을 쓰다 말고/책 한권을 새로 펼쳐든다, 호롱불이/춤을 추었다.
이윽토록 넘기는 책장 위에서/내 어릴적,/파도처럼,/호롱불은 일렁였는데
마음마져 가난해졌단 말인가, 책 위에/손을 얹고/자꾸만./자꾸만 빈 생각에 젖어 드는 건.
그의 글귀는 가슴 뭉클한 감동이 있다. 말로 할 수 없는 전율이 있다. 그럼에도 글이라는 것은 글로 만나는 것이 좋다. ‘참 좋은 만남’이었지만 왠지 사람의 얼굴은 떠올리고 싶지 않다. 아마 그도 그렇지 않았을까? 그저 글로 보고, 그 글에 대한 느낌만으로 남는 것. 그래서 좋은 것은 좋은 것으로만 남겨 놓는 것이라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겠지? 다시 만나면 처음보다 훨씬 친숙한 사이가 될지 언정, 글 속의 그와 나는 자꾸만 멀어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참고=시인 박형진은 1994년에 <창비>로 등단해 “바구니 속 감자 싹은 시들어 가고”(1994 창비), “다시 들판에 서서”(2001 당그래), 두 권의 시집을 내고, “모항 막걸리집 안주는 사람 씹는 맛이제”(2003 디새집)란 산문집도 냈다. “주꾸미 통신”은 이미 10년 전에 ‘내일을 여는 책’에서 “호박 국에 밥말아 먹고 바다에 나가 별을 헤던”이란 제목으로 출간됐다가 초판으로 그만 묻혀버렸다가 다시 재출간한 것이다. 제목 바꾸고 나서인지, 주꾸미 통신이 제법 팔렸고, 필자가 박시인의 책 중에서 유일하게 읽은 책이다. 작가와 시인과의 만남이 어쩌면 부안을 갈 때면 또 한번씩 떠올릴 얘깃거리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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