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다보면 우연찮게 괜찮은 여행지를 만나기도 한다. 늘 틀에 박힌 듯 유명장소를 배회하기가 일쑤인데, 같은 장소를 맴돌다가도 비슷한 장소에서 못 보던 곳을 만나게 되는 때가 있다. 그래서 주마간산(走馬看山)식 여행은 결국 누군가가 제시해준 정보를 따라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여행을 해왔음에도 필자 또한 고정관념을 비껴가지 못할 때가 있다. 고창에서 3일간을 머물면서 잠시 낙조를 찍기 위해 구시포 해변 쪽으로 달리다가 우연찮게 염전을 만나게 된다.

연 이틀 읍내에서 낙조를 찍기 위해 바닷가를 달려봤지만 첫날은 허탕이었다. 붉게 떨어지는 해를 망연자실 보다가 결국 바다에 이르지 못하고 터덜거리며 뒤돌아설 수밖에 없었고, 그 다음날 일찌감치 서해로 찾아 나서기로 작정한 것이다.

새파란 하늘과 새하얀 염전

9월이지만 한낮의 뙤약볕은 여전히 따갑다. 읍내에서 동호와 구시포 팻말을 따라 가면 해리를 만나고 다시 길은 나뉜다.
동호 쪽으로 발길을 돌려 차를 몰고 가다보니 골프장 팻말이 나선다. 선운레이크 골프클럽(063-560-2000, 아산면 용계리). 언제 골프장이 생겨났을까 하는 의문도 잠시,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도로변 우측 저 멀리 펼쳐지는 염전(고창군 심원면 고전리)이다.
하늘은 유난히 맑고 흰 구름이 둥둥 떠 있어 너른 염전과 조화를 이루면서 멋진 풍경을 자아낸다. 들어가는 길을 찾느라 이리저리 헤매고 있을 때 골프장입구를 지나치게 된다. 염전마을 옆에 골프장이라. 자세한 내막이야 알 필요 없겠지만, 나름대로 티격태격 말도 많았을 것 같은 그런 위치다. 골프장을 지나면 긴 방파제처럼 포장되지 않은 길이 이어지면서 우측으로 바둑판처럼 염전이 펼쳐진다. 한쪽에서는 한갓지게 골프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땡볕에 시달리면서 소금을 채취하는 모습이 극과 극을 달린다.
조심스럽게 소금창고로 다가선다. 덕지덕지 만들어놓은 여느 소금창고보다 다소 깔끔한 느낌이다. 너른 평원에서는 햇살에 의해 만들어지는 소금채취에 여념이 없다.
해풍을 타고 피부에 전달해오는 염분이 끈적거린다. 염전에서 열심히 대패질을 하는, 햇빛에 구릿빛으로 변한 촌부의 얼굴에서 그들의 애환을 읽는다. 이곳은 알고 보니 천일염으로는 최상으로 손꼽히는 삼양염전.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땅 주인이 삼양사이고, 촌부들은 이곳을 임대해 소금을 생산해내고 있는 것이다.
자료에 의하면 이 염전사무소와 창고는 1939년 삼양사의 설립자인 김연수 씨가 지은 것으로 당시 국내 최대규모를 자랑했으나 그간 염전사업이 쇠퇴하면서 방치됐다. 염전을 따라 길게 늘어선 사무소와 창고 등의 건축물은 목조 단층 지붕에 슬레이트를 얹은 형식으로 건립됐다. 건물 중 일부는 1950년 한국전쟁 와중에 소실됐으나 이후 신축되기도 했다. 이 소금창고를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소금창고에는 하얀 소금이 채워져 있다. 잘 정돈된 염전에서는 나무판을 이어서 대패질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다. 똑같은 작업을 계속 해대는 모습은 일반인이 보기에도 힘겨워 보인다. 노심초사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데, 사진을 찍지 말라는 아낙의 앙칼진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곳 또한 영광의 소금창고처럼 신경이 날카롭다.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 소금양이 많이 부족해졌다는 얘기를 뒤로 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이곳 소금은 없어서 팔지 못 할 정도로 인기를 누리는 지역이란다. 어쨌든 골프장이 생기면서 염전공간도 확연히 줄어든 것만은 확실하다. 골프장을 끼고 돌아가니 텅 빈 바다가 모습을 드러낸다. 여름에도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에 의아해하다가 더 가보니 길 우측에 햇빛 가리개를 단 경운기 두 대가 서 있을 것을 보게 된다. 그 옆으로는 새로 지은 듯한 건물이 있었고, 그저 무심하게 지나쳤다가, 다시 길을 돌아오면서야 그 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새 건물은 만돌 조개체험장이었다. 아직 간판도 달지 않은 채 달랑 건물만 있는데, 그래도 인근에서 찾아오는 체험객들이 있다는 것이다.

만돌 조개체험장의 고동과 조개

이웃하고 있는 심원면 하전마을에서 조개체험장을 하고 있는데, 그곳이 나름대로 인기를 누리면서 이웃하고 있는 만돌해변에서도 체험장을 만든 듯하다.
이미 체험객이 떠난 상황이라, 그렇게 눈도장만 찍고 돌아서는 줄 알았는데, 운 좋게 늦은 시간에도 체험객들이 찾아든다. 경운기를 타도 좋다는 허락을 얻어내고 죽도 섬 안으로 들어선다. 바닷길은 보기보다 울퉁불퉁해 어릴 적 비포장도로를 달려가는 듯 덜컹거린다. 엉덩이뼈가 부서질 정도로 강렬한 지역도 있다.
섬을 둘러보기에는 시간이 짧았고, 게다가 발에 밟힐 정도로 많은 고동 때문에 그 어느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30여분도 채 안돼서 물이 들어올 시간이 임박해졌고, 서둘러 경운기를 타고 나왔고, 일부 사람들은 장소를 옮겨 조개를 캐러 떠나고 필자는 마을에 내렸다. 죽도 섬으로 지는 해가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이곳 또한 사진가들이 즐겨 찾는 사진 포인트였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학생 두 명이 자전거를 타고 있는 모습과 해거름이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만들어낸다. 언젠가 또 한번 이곳을 찾게 될 것은 분명하다. 모든 것 차체하고 발 벗어 제치고 바다에서 고동, 조개, 게를 잡을 것이다. 만돌 어촌체험장 문의(063-561-0705, 체험비 : 어른 1만원, 아이들 : 7천원).

■자가 운전 = 서해안고속도로 선운사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선운사로 향한다. 선운사 입구에서 하전리 서전마을까지는 5km쯤 되고 선운사 나들목에서 하전리까지는 30분쯤 걸린다. 물때를 못 맞춰 가야 한다/호남고속도로 정읍IC에서 정읍 22번 국도-흥덕(22번, 23번 갈림길)으로 들어와도 된다.
■별미집과 숙박 = 직접 다슬기를 잡아 삶아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선운사 주변에서는 풍천장어를 맛보면 된다. 산장회관(063-563-3434), 신덕식당 등 다양하다. 장어는 기름기가 많아서 굽는 방법에 따라 맛 차이가 크다. 숯불에 구워 먹는 집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구워 나오는 것보다는 직접 구워 가면서 먹을 수 있으면 된다. 필자가 간, 선운사 가는 길목의 강촌식당(063-563-3471, 반암리)은 맛이 괜찮은 곳이었다. 숙박은 선운산관광호텔(063-561-3377, 해수탕이 있음), 동백호텔(562-1560), 선운장(561-2035)이 있다. 그외 민박집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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