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전문 산꾼이나 이끼 사진에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는 찾지 않을 곳. 특별한 목적이 없으면 가지 말라고 하고 싶은 곳이 삼척 무건리 이끼계곡이다. 어렵사리 찾아간 이곳을 굳이 가보라고 원고를 쓰는 것이 아니라, 그저 못 가본 사람이라도 눈요기라도 하라는 의미다. 꼭 다시 가보고 싶지만 두 번 가기가 엄두나지 않을 그런 곳에 용소폭포와 무건리 이끼계곡은 숨겨 있었다.
이끼계곡, 그것은 필자에게 있어서는 상당한 부담감을 안겨주었다. 평창의 장전리나 두타산 이끼계곡을 비단길에 비유한다면 지리산 실비단이나 삼척 무건리는 가슴을 짓누르는 압박감을 안겨주었다.
목적이 없었다면, 굳이 행하지 않을 힘겨운 여정. 그것은 돌아오고 나서도 ‘휴우’하고 한숨이 나오는 이유가 있다.
도계 읍을 지나 삼척 쪽으로 조금 가면 고사리라는 마을 팻말이 나선다. 그 팻말을 따라 우측으로 가면 시멘트 동굴을 만나게 되고, 이어서 인가가 띄엄띄엄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까지는 시멘트 포장이 돼 있어 수월한데, 정작 무건리라는 마을 표시는 발견할 수 없다.
길 끝까지 가면 우측에 현불사라는 개인사찰이 하나 있고 더 위쪽으로는 아주 오래전부터 살아왔음직한 민가 한 채가 있다. 양지 바른 언덕위에 집을 지은 곳인데, 밑에는 너와를 얹은 방앗간이 있다. 통방아 인 듯하다.
길을 묻기 위해 집안 쪽으로 들어서니 곱게 늙은 부부가 다정히 앉아 있다. 할머니는 방안에서 곱게 만두를 빚고, 할아버지는 78세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그을리지 않은 피부를 갖고 있었는데, 얼굴빛에서는 건강미가 넘친다.
30년 넘게 이곳에서 살아왔다는 노부부는 무건리 용소를 잘 아는 듯 설명을 해준다. 그러면서 찻길이 있으니 이장 댁에서 열쇠를 받아들고 올라가라고 가르쳐 준다. 4km정도 찻길로 가서 300m정도만 내려가면 된다는 것이다. 4km를 차로 움직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가. 걸어서라도 가봐야 할 상황이니 말이다.
이곳을 찾기 전 삼척시청과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어 놓은 상황이다. 차단기가 내려져 있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아가는 듯하다는 것이 시청 직원의 말이었는데, 인터넷에서는 친절하게도 이장댁 전화번호까지 적혀 있었다. 이장은 일찍 밭일을 나갔는지 연락이 되지 않았는데, 다행히 차단기는 걷혀 올라가 있었다.

위험한 벼랑길 지나

남동쪽 두리봉·육백산 사이로 6~7㎞ 뻗어 올라 간 성황골. 초입은 나름대로 시멘트 포장길이 이어지는데, 웬걸, 커브를 돌 때는 4륜 기어를 넣었음에도 차가 뒤로 밀리기 시작하면서 진땀을 나게 한다. 한기가 몰려온다. 하동 차밭에서의 공포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 길은 내려오면서 커브를 꺾다가 벼랑에 빠질 것 같은 위태로움에 가슴 저려야 했으므로 각별히 유의해야 할 길이다.
가까스로 고갯길을 오르니 우측에 돌담을 쌓아 올린 나무 한그루가 모습을 드러낸다. 당시는 몰랐는데, 이곳이 바로 성황나무란다. 성황나무 옆 산굽이를 돌면서 국시재 오르막은 완만해진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긴장은 멈출 수 없다. 길은 차 한대, 경운기 한대가 겨우 지나칠 정도로 좁고, 가끔은 옆길이 파여 나간 곳도 있다.
자칫 잘못하면 긴 벼랑길로 차가 굴러 떨어질지도 모를 위태로운 순간이 이어진다. 쥐죽은 듯 조용한 산길에서 반갑게 오토바이 한대를 만난다. 땀을 펄펄 흘리고 있는 남정네에게 길을 묻는다. “이 더운데 폭포는 어찌 가려하오” 안쪽에 사람이 있느냐고 했더니 “한사람이 있을 것이다”고 말해주고 그는 떠나갔다.
이내 한참을 달려가니 우측 언덕위에 민가 몇 채가 눈에 띄고 길은 막바지다. 인기척은 없다. 이 마을을 큰말이라고 부른다. 5~6집이 있으나 모두 비어 있다가 삼척·태백 등에 내려와 살면서, 여름철 작물 가꿀 때나 드나든다고 한다.
이 큰말은 한때 소달 초등교 분교까지 있던 마을이다. 주민이 줄면서 학교는 문을 닫고, 큰물에 쓸려 학교 터는 폐허가 됐다. 무건 분교장이 있었다는 터는 무성한 풀숲에 숨었는지 눈에 띄지 않고 그저 평지를 보면서 애써 찾아낼 정도다.
길 끝나는 지점에서는, 양철 문을 닫아걸어 놓은 사각진 조형물위에 누군가가 친절하게 ‘우물’이라고 표기해두었다. 문을 열면 큰 바가지 하나가 걸려 있고 석간수가 모여 우물을 만들었다. 물은 매우 차고 달다.
이곳에서 봇짐을 챙긴다. 300m 거리라니 그다지 힘겹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위로도 하고 앞서간 사진가들이 무수한 발자국이 길을 잘 만들어 놓았을 것이라며, 무서움을 떨쳐 버리려 애를 쓴다.
길은 단 하나, 오른쪽 언덕길을 내려서자 길 우측에 누군가가 손으로 ‘폭포?!’라고 손 글씨를 써 놓았다. 찾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울창한 숲길에 소로가 잘 나있고, 때로는 묵힌 밭에 풀이 무성한 곳도 지나친다.

반갑게 맞이하는 물줄기

하지만 충분히 찾을 수 있을 정도의 길이 뚜렷하다. 길은 계속 내리막길, 10여분 정도 달려갔을까. “쏴아”하는 물줄기가 반갑게 맞이한다. 계곡이나 폭포가 골짜기로 흐르는 것이니 능선 길에서는 한참을 내려와야 하는 일은 당연지사. 가파르지만 못 걸을 정도는 아닌데, 이곳에서도 누군가 친절하게 외줄을 걸어두었다.
드디어 폭포와 소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다지 높지 않은 높이 7~8m다. 폭포 물줄기는 주로 바위 오른쪽을 타고 흘러내린다. 소 오른쪽 산비탈엔 또 다른 폭포(10여m)가 이끼 무성한 바위들에 걸려 있다. 그저 이곳에서 셔터를 누를 수밖에 없다.
폭포 위로 난 밧줄을 타고 올라가야 함을 알지만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단 한사람만 더 있어도 용기를 냈을 텐데, 아쉽지만 오던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언제 기회가 될지 모르지만 다음에 꼭 한번 가보기로 하련다.
먼저 다녀간 사람들의 말을 빌리면 폭포 왼쪽 바위벽에 늘어진 고정 밧줄을 잡고 오르면 높이 10여미터의 아름다운 이끼폭포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용소도 있으며 제 모습은 이곳에 숨겨져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은 혼자서는 절대 가지 말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말이다.
행여 가더라도 물줄기가 불어날 때는 욕심을 버리는 것이 가장 좋다. 그저 오지 마을의 공기를 내 가슴속에 가득 담았으며, 사람 손길 전혀 닿지 않은 폭포를 봤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여행이라고 위안하길 바란다.
힘겹게 찾아간 무건리 이끼계곡. 내려오면서 전동섭 무건리 이장 집을 찾았다. 칠순이 넘은 그는 이곳 토박이는 아니었다. 빈집에 들어와 손보고 살아온 지가 10년째. “위로 올라가야 용소도 보고 그럴 텐데. 얼마 전 도계에 살던 6명의 아주머니가 왔는데, 한명도 위로 못가고 돌아왔다”는 말도 전해준다.
이런 오지에도 사람들이 얼마나 찾는지, 한꺼번에 차량 10대도 들어간 적이 있단다. 어떻게 차를 돌리는지, 마주 오는 차가 있으면 비껴줄 틈이 전혀 없는 외길을 말이다. 무더기로 몰려다니는 사진동호회들이겠지. 차라리 이번 여행에서 그들이라도 만났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는데, 정작 그들은 물줄기가 세어지는 때를 기다리는 것인지. 어쨌든, 그저 눈만이라도 충족되기를 바란다.
하산갈,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석회동굴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댄다. 더 내려오면 용소물줄기가 내려오는 계곡을 만난다.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이 계곡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들은 저 깊은 상류에 이끼계곡, 용소물줄기가 이리 합류됨을 인식이나 할까?
■자가운전= 영동고속도로-원주 만종분기점 우회전-중앙고속도로-제천나들목-38번 국도 영월 방향-영월-태백-도계. 또는 강릉-동해고속도로를 이용해 삼척으로 들어와도 된다. 환선굴 방면에서 도계방면으로 오면 중간 즈음에 고사리마을을 만난다. 고사취수장 앞 다리 건너 직진, 산터(산기) 마을 지나 석회암 채굴장 거쳐 오르면 시멘트길 삼거리가 나온다. 왼쪽은 월명사, 오른쪽은 국시재로 가는 길이다. 가파른 오른쪽 길로 500m쯤 오르면 마지막 민가가 왼쪽에 보이고 우측에 현불사가 있다. 차단기는 길 못 미쳐 우측 푸른 양철지붕 이장댁 옆에 있다. 차단기가 내려져 있을 때는 전동섭 이장(033-541-4314)댁에 미리 연락을 해야 한다.
■기타정보 = 주변에 먹거리와 숙박지는 전혀 없다. 도계나 삼척, 태백등지를 이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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